예수님이 타신 나귀

미네소타를 떠나 온지 벌써 2달이 넘었다. 8년을 넘게 사랑했던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 미네소타를 그리워하는 것이 흠은 안 되겠지. 미네소타를 떠나오는 마지막 주일, 감사하게도 설교할 기회를 주셨다. 난 아직 그 설교를 기억한다. 아마도 평생 기억하며 살게될 것 같다. 내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귀와 같은 삶을 살아주지 않겠니?”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난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며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대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호산나 호산나 외치고, 종료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의 외투를 그 발 앞에 두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춤추며 노래하며 소리쳤을 거다. 그 모습은 마치 축제와 같았겠지. 그리고 그들은 그 당시 진심이었을 거다. 예수님을 정말 좋아하고 환영했을 지 모른다. 예수님도 그들의 행동을 진심으로 여겨주셨던 것 같다. 비록 곧 ‘십자가에 못박아라 못 박아라’ 외쳐대는 뒤틀어진 진심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예수님은 그 순간 그들의 진심 그대로 받아주셨다. 나라면 조용히 하라고, 시끄럽다고 소리쳤을텐데… 예수님 참 대단하시다. 하지만, 자신의 유익에 따라 쉽게 바뀔 진심이라면, 난 닮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을 호위하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 동안의 모든 고생과 설움이 한 번에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아마 수 많은 일들이 그림처럼 지나갔겠지. 자신들이 제일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일, 그리고 자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게 되었던 일들에 뿌듯했을 것같다. 예수님과 함께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어켰던 일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일들도 기억해 냈을 지 모른다. 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치 자신들이 주인공인 된 양 어깨를 치켜세웠을 지 모른다. 사실 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싶다.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날에 예수님과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예수님과 즐겁게 얘기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닮고 싶은 것은 그 제자들도 아니다. 사실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돌아섰다. 그것으로 제자들은 예수님 보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높아지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좇는 제자라면 난 별로 닮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이 타신 나귀.

정말 닮고 싶은 것은 바로 예수님이 타신 나귀였다. 그 자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시도록 자신을 한 껏 낮춘 녀석은 오직 나귀 뿐이였기 때문이다. 무리들처럼 화려한 환영도 없었고, 제자들처럼 과거 자랑할 만한 추억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만 빛이 났다.

난 그 날 설교를 잊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나귀로 초청하신다고 느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시도록 살아달라고 하셨다. 오직 그분의 임재만을 deliver하는 삶을 살아 달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타신 바로 그 나귀처럼.

그 나귀로를 다시 기억하며 난 오늘 금식을 멈췄다.

“하나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노스필드장로교회의 자랑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저를 평생에 하나님의 임재만을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나귀처럼 부족하기에 하나님만 더욱 빛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까지 나귀와 같은 이유로 저를 사용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계속 그렇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할렐루야. 내 삶가운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거룩한 주만 보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