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과 왕정

안식과 왕정

하나님께서는 온 열방이 창조의 목적으로써 안식을 잊지 않기를 원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을 깨뜨려 버린 바로 그 순간부터 안식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은 시작되었다고, 그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었고, 재림으로 말미암아 안식은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은 다윗과 솔로몬왕의 시대에 와서 마침내 꽃을 피웠다. 통일왕국시대는 왕정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신정국가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이것을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 한 민족 가운데 계시고,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열방가운데 나타나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이유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서 성전을 준비하게 하셨고,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완성시키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곳, 에덴동산에서 나타나셔서 친히 그들과 친밀한 사귐을 나눠주셨던 것처럼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간구를 들어주셨고, 친히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다. 성경에 나타난 왕정시대의 기록은 대부분 성전을 짖기 위해 준비하는 일, 성전을 완성하는 일,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의 역할과 자격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특별히 역대상 전체는 성전에 관한 얘기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를 친히 원하셨고, 그곳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열방 가운데 나타나기를 원하셨다. 그 증거가 바로 에디오피아에서 온 시바여왕이다. 시바 여왕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보고 놀라워 했다(왕상 10:5) 그리고 이스라엘 왕의 하나님을 찬양했다(왕상 10:9).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공동체,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은 그들의 풍성함이 예배를 통해 나타났고, 찬송으로 나타났고(시편),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나타났다(아가서, 잠언, 전도서). 나라는 안정되었고, 백성의 삶은 풍성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안식이 회복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다윗의 나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번에 이 일을 이루신 것이 아니었다. 여기엔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다. 안식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사람을 준비하셨다. 애굽에서 작은 족장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이 되어 출애굽하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은 안식의 삶에 합당한 삶의 방식을 얻게되었고, 여호수아의 정복을 통해 땅을 얻게 되었다. 결국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던 모든 약속이 이뤄졌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왜 광야시대가 아니었는지 질문하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은 두 가지였다. 첫 째,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열방 가운데 드러나기 위해선 세상 밖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 둘 째, 세상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선 반드시 정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보호와 인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광야의 자리를 안식의 자리라고 하지 않고, 정복 이후에 얻게될 땅을 안식의 땅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복하게 되었고, 여호수아의 정복 이후에는 안식이 시자되어야 했는데, 왜 안식을 누리지 못했나? 하는 질문에서 다시 사사시대를 논하였다. 그리고 그 답은 “망각”이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잊어버렸고, 또 정복의 필요성을 잊어버린 망각에서 우린 답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가 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안식을 누리게될 것이라는 약속의 소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왕정시대와 안식에 대해서 논하면서 다시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 사사시대로는 안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주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누리지 못하고, 왜 세상 나라처럼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필요하게 된 것일까?

먼저 사사와 왕의 차이는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대사와 같은 사람이다. 즉 첫째, 권세보다 사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사람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시는 사람이다. 그러나 왕은 다르다.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왕을 통해서 압제를 당할 수 있을 만큼 왕의 권세가 커졌다. 사람들은 왕을 섬겨야 했다. 즉 사명보다 권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둘째, 첫째 사울왕과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부어 세웠으나, 그 외에 왕은 왕족의 대를 이어 세워졌다. 이렇게 단순 비교를 해 보았을 때에 어떤 세대가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제도일까? 난 사사시대라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사들이 다스렸던 모든 세대는 평안 하였으나, 왕이 다스린 세대는 다윗왕과 솔로몬왕 이후에는 평안하지 않았다. 사사들이 없는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사사를 주시기를 간구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일 사무엘에게 자신들에게도 다른 나라처럼 왕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왜 사사시대가 끝이 났을까?

그 답은 사사기 마지막에 나타난다(삿21:25) 그 때에 왕이 없었으므로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세우기 원하셨던 이유는 딱 하나다. 안식의 회복. 세상의 나라와 달리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이뤄지는 풍성, 안식을 이루어 열방 가운데 안식을 다시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민족을 세우고, 법을 세우고,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잊어버리니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찾으셔야만 하셨다. 그래서 왕을 좋아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왕을 세운 것이라고 보아야 옳겠다.

결국 왕의 역할은 분명해 진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역하는 삶을 살도록 상기시키는 일. 망각하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왕의 사명이다. 사람 앞에 사람을 세워 일하시는 방식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원치 않으신다고 난 생각한다(마 23:10).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세를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많은 권세가 있다고 해서 자기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 우리가 싫든 좋든 그 위치에 하나님께서 차선책으로 놓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사람 앞에 사람을 세우실 때에 주신 단 한가지 일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이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우리 모두를 왕이라 불러주셨다. 권세를 특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나님 앞에 세우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제사장이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제사장. 이미 교회는 안식이 회복되었다. 안식의 땅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망각한다면 안식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왕이 필요하다. 영적 리더가 필요하다. 세상은 영적 리더를 필요로 한다. 권세의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것이 성공을 이룬 적이 있다. 딱 두번. 아니 한 번 반.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젊은 시대 반. 왕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그 세대를 이어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