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과 분열왕국시대

안식과 선지자

 

안식은 창조의 목적입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근본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축복은 에덴동산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즉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모든 풍성함(하나님과의 친밀함,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하나님과의 동역, 자유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였던 축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는 것은 본심이 아니십니다(애3:33). 하나님께서는 인생으로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그 풍성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생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그 놀라운 풍성함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한 그 순간 이후로부터 깨져버린 안식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셨습니다. 범죄한 아담을 먼저 찾아오신 이가 하나님이셨고, 그 아담을 찾으시며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셨고, 그를 만나 그들에게 가족옷을 입혀 주신 것도 하나님이셨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원시복음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속죄제물의 제사를 통해서 다시 잃어버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안식에서 멀어진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을 바로 제사, 예배였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 없는 에덴동산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마치 에덴동산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가인의 후손과 바벨탑 그리고 에서의 후손들). 실제로 그들은 기술, 예술 문화의 분야에서 세상을 앞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님 없는 완벽한 동산을 꿈꾸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열방을 대상으로 하는 안식의 회복을 포기하십니다. 그리고는 한 민족을 세우시고, 그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거처를 두시고(성막.성전),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동산의 회복(안식의 회복)의 모델을 만들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의 모델을 친히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많은 민족을 이루시고, 그 민족들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방법, 그 공동체가 거룩해 지는 방법을 친히 가르치시고, 훈련하셨습니다(율법). 그 뿐 아니라, 그 율법은 그들의 삶의 목적 –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근원적인 축복이 바로 안식그렇게 훈련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두지 않으시고, 가나안 땅, 즉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비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안식의 삶, 에덴동산의 회복을 열방가운데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의 누릴 수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주는 풍요함 속에서 다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잊어버렸고, 세상을 정복함으로 온 열방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동산의 회복(안식의 회복)에 대한 사명도 잊어버렸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해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 사사가 죽은 이후로는 또 다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리고,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고 맙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역하며, 성전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열방에 드러내는 안식의 회복사역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 시대에 그 정점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나라는 실로 하나님과 함께 풍성함을 누리는 나라,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나라 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루게 될 분열왕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열방 중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 풍성함을 나타내는 “열방 가운데 나타난 안식의 모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다윗을 통하여 경고한 일이기도 했습니다(시 95 7-11, 히 4:5-11 참조). 다윗과 솔론몬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한 나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담에 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은 열방 가운데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솔로몬왕 이후 남쪽은 르호보암이 북쪽은 여러보함이 다스리며 분열왕국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분열왕국시대는 솔로몬왕 이후로 부터 북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다가 BC 589년에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시기 까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분열왕국시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안식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교훈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안식의 회복으로써의 모델은 외형을 갖추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동산의 회복, 안식의 회복을 꿈꾸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고 스스로 우기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과거의 영광이나, 그 모습만 재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로보함과 그를 따르는 10족속이 이룬 북이스라엘을 통해서 잘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이 이룬 나라, 자신들의 유익을 만족시키는 나라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루살렘의 성전 가운데 거하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자들입니다. 매년 절기 때마다 성전에서 예배하며 그 가운데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필요를 위해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나뉘어지면서 지역상 남유다에 속한 예루살렘의 성전의 대안이 필요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고민없이 그 대안을 만들어 놓습니다. 북이스라엘 지역에 곳곳에 산당을 만들었고, 레위인을 폐하고, 스스로 제사장의 직분을 세웠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절기를 세워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왕상12:21-33 참고). 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섬기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안식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 제정한 절기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던 예배할 자리가 있었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우기면 되었고, 나름의 더 좋은 절기와 프로그램들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지금 혹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이 회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델이 아니라 실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복된 안식의 실체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종교적인 형식으로 가득채우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을 운운하며, 지금 갖춰놓은 종교적인 틀 안에서 하나님은 이곳에 계신다고 믿으라고 우기며 얼마든지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여르보함의 실수를 반복하며 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엔 안식이 없습니다. 여로보함의 뒤를 다른 북이스라엘의 왕들에는 그 후에 단 한 명의 왕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정을 행한 왕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형식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감히 바꾸려고 했던 그들의 실수가 얼마나 악한 결과를 만들어 내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1. 안식의 회복으로써의 모델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이 있다하여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비판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성전이 그대로 그곳에 있었고, 그 때의 제사장들이 있었고, 또한 말씀을 선포하는 참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남유다는 악정을 베푼왕들과 선정을 베푼 왕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합당한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럼 언제는 안식의 회복모델로써 합당한 나라였고, 어느 때에는 안식이 회복된 나라라고 말하기에 부족하였을까요.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리더들이 선지자들로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나라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제하는 임재와 그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북이스라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남유다가 행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안식이 온전히 회복된 초대교회에 주신 경고였습니다(히4장 5-11 참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가나안 땅(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유다엔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성전이 있었고, 참된 선지자들이 있었으나,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나라로써 안식의 회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이 회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나라로써가 아니라, 교회로써 회복된 안식을 열방에, 주변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에 분열왕국의 시대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실제하는 임재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안식을 온전히 누리며, 하나님의 동력자로써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