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아는 사람

 

시카고엔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직 시카고에 온 지 3개월밖에 안 되었으니까 당연하다. 9년전 미네소타에서도 첨엔 그랬다. 정말 아는 사람 단 한사람도 없었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네소타에 아는 사람이 제일로 많다. 매주 미네소타에서 아는 사람이 온다. 나 때문에 시카고에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주 미네소타에서 오신 손님들을 만난다. 2개월 동안은 매주 교회로 찾아와 함께 예배해 주셨다. 참으로 큰 격려가 되었다. 잊지 않고 찾아와 격려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서 와주시는 것보다 격려차 와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 그렇게 보면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 분들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인들은 내가 좋은 목사여서 그런 줄 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무리 설명을 해드려도 안 믿으시니.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서 그저 행복하다고 할 수 밖에. 그리고 이곳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기를 기도할 수 밖에.

 

글이 이상한 곳으로 갔다. 처음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는 이찬수 목사님이다. 난 이찬수 목사님을 참 좋아한다. 물론 그 분은 날 모르신다. 나만 그분을 알고 나만 그분을 좋아한다. 벌써 20년 째 그러고 있는 것 같다. 1994년이었든지 97년이었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국 SFC학생 수련회 새벽기도 강사로 이찬수 목사님께서 오셨다. 새벽기도 강사셨던 이찬수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아서 은혜를 참 많이 받았던 것 외에 다른 기억은 없다. 그런데 그 기억 하나만으로 난 충분히 행복하다. 그 후로 계속 그 분을 혼자 좋아 했었던 것 같다. 신학생 시절 고려신학대학원에 오셔서 강의를 했었다. 청소년 사역에 대한 세미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의 내용이 얼마나 좋았든지 강의가 끝나고 나만 혼자 앉아서 엄청 울며 기도했었던 기억이 난다. 주빌라테라는 청소년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세분의 청소년 전문가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었다. 부산으로 내려 가기도하고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렵게 이찬수 목사님과 인터뷰도 잡았다. 1시간 남짓 이찬수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아직도 생생하다.

“청소년 사역은 성육신 사역입니다. 사역자가 청소년들 문화로 그들의 모습으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거룩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청소년들의 문화로 내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옳은 소리만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역자들은 청소년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이 행동합니다. 그들에겐 청소년들을 변화시킨 그 어떤 거룩함도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완변하게 성육신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사람이 되셨지만 온전한 거룩을 이루었던 것처럼 청소년 사역자도 그래야 합니다”

난 아직도 그 분이 하셨던 말씀들을 거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코람데오 청소년 수련회를 천안에서 잠시 돕다가 잠깐(1분) 뵈었던 것, 분당 우리교회에서 개척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대전에 살았던 우리 부부가 분당까지 예배드리러 갔던 것, 이찬수목사님과의 기억은 이상하리 만큼 다 기억한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크게 목사님과의 친분을 자랑할 만한 일들은 없다. 그야 말로 나혼자 좋아하는 그냥 나만 아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분당우리교회가 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 괜히 내가 다 기분이 좋으니 참 이상하다.

 

시카고에 왔더니 나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만난 많은 분들이 이찬수 목사님을 자랑하셨다. 같은 교회 다녔었다고 자랑하시고, 함께 성가대 했었다고 자랑하신다. 어떤 분은 그 분 당신 교회 목회자로 오실 뻔 했었다고 자랑하시고, 심지어 어떤 분은 자신의 이름이 ‘이찬*’라면서 이찬수 목사님이랑 아마도 학렬이 같다고 자랑하셨다. 그래서 자신이 이찬수목사랑 많이 닮았다고 자랑하셨다. 그러고보니 이찬수 목사님이랑 닮긴 닮으셨다. 그래도 이찬수 목사님이 닮고 싶을 만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 그래도 난 이찬수 목사님과의 사소한 친분을 자랑하는 그냥 아는 사람들이 난 좋다. 그냥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친분이라도 자랑하고 싶게 만든 이찬수 목사님이 좋다. 그리고 나도 그런 목사이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목사. 아주 사소한 친분이라도 있으면 그것만이라도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목사, 그런 목사였으면 좋겠다. 난 나랑 함께 동역한 분들에게 정말 자랑이 될만한 목사일까? “강선우 목사님이랑 나 함께 사역했었어 나 그 분 잘 알지”하며 자랑할 수 있을만한 목사였으면 좋겠다.

 

나에게 적어도 이찬수목사님은 그렇다. 조그만한 친분이라도 자랑하고 싶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에겐 더 자랑하고 싶은 분이 있다. 그 분과 나는 그냥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니다. 사랑하며 함께 동역하는 사이이다. 그 분은 예수님이시다. 난 이찬수목사님과 함께 사역하지는 못했지만 괜찮다. 난 매일 예수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으니까. 난 이찬수목사님과 친분이 별로 없는 그냥 아는 사이지만 괜찮다. 예수님과 나는 친밀한 사이니까. 내 삶의 역사를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이니까, 게다가 지금도 매일 새로운 이야기 만들어가는 사이니까. 예수님을 마음 껏 자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냥 아는 사이로 자랑하는 게 아니어서 난 너무 좋다.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